천의무봉/ 제 6화

소마
으음. 그렇지만 어떻게 하면 좋을지. 본인들이 빠져나오기도 힘든 애로사항에 갇혀 있다는 것은

쿠로
빠져나갈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무대를 점령하는 베테랑의 병력을 밀어내고 자신의 설 자리를 얻어내거나, 다른 무대를 찾는다는
[UNDEAD]나 [Ra*bits]는 기본적으로 후자를 택했다고 봐야지. 자리는 늙은이들에게 양보하고, 자기들은 제멋대로 넓은 세계를 누비고 다니면서

소마
음.... 그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일지, [베테랑]의 세력도 별로 적은 아니고, 본인들도 그렇게 해야한다고 생각하오

쿠로
그렇지만, 우리는 그쪽은 쉽게는 못 고르겠어. 랄까, 그걸 선택하면 우리는 최대의 무기를 버리는 꼴이 되니까 말이야
[일본품]이라던가, [전통] 이라던가... 그런, 우리들의 장기를 말이지
유메노사키 때는 같은 방향성의 [유닛]이 없기도 했고, 그게 눈길을 끄는 개성으로 작용했는데
오래된 소속사인 리즈링에서, 그런 우리들의 개성은 개성이 아니야. 돌을 던지면 진짜 가부키 배우나 가무연극을 하는 사람이 나오는 환경이다
겨우 2년 정도 밖에 활동하지 않아서 그런지 우리는 [진짜]에게는 당해낼 수 없어. 활동해온 기간이 너무 차이가 난다고

소마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하는건 키류공이나 하스미공이 아니잖소?

쿠로
물론. 우리도 딱히 전통예능의 승자라는건 아니고 아이돌이니까
뭔가, 능숙하게 자신의 개성을 버리지 않고, 본인의 지위를 확립하기 위한 방법을ㅡ
ㅡ라고 하면서, 하스미가 이것저것으로 움직이고 있어. 산더미처럼 기획서를 쓰고 말이야. 하지만, 지금으로써는 아무런 성과가 없는 게 현재야

소마
아아... 하스미공, 짬을 내서 기획서 따위를 만드는 모양이더군
그런 경위었던 것인지. 지치고 졸 정도로 피로해져있던 것도, 모두 우리 [홍월]의 미래를 위해서였구려

쿠로
그런거다. 아무래도 겉도는 느낌인데.... 항쟁시대에도 그렇게, 막막해보이는 하스미는 본 적이 없었어
정말로, 뭘 해도 나아지지 않아. 반응도 돌아오지 않고, 제출한 기획서도 모두 툭, 툭, 툭
뭐 하스미는, 낯가죽이 두꺼워서 그정도로 마음이 꺾이거나 하지는 않겠지만
역시 스트레스가 쌓여있는 것 가아, 요즘은 늘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그 스트레스가 어제 드디어 폭발한 셈이지. ...뭔가 남의 일처럼 말했지만, 뭐 도화선에 불을 붙인건 나니까

소마
그렇다는 것은?

쿠로
하스미가, 소중히 기획서를 냈어
그야말로 잠자는 시간도 아껴서 써낸 역작으로, 그 녀석이 머리까지 숙이곤 해서 나도 이래저래 도와주거나 했지만

소마
본인, 그것은 모르는 일이오만.... 어째서 본인만 논외로 두었던 것인지?

쿠로
그건, 미안하다. 몇번이나 말하지만 폼잡고 싶었던 것 뿐이야, 나도 하스미도
뭔가 니가 동경할 수 있는 [멋진 선배]의 이미지를 유지하고 싶었어

소마
... 그점에 대해서는, 다시 말하고 싶은게 많아서 지금은 뭐라 할 수 없지만. 본인을 전력으로 카운트해 주지 않은 것은, 매우 유감이라고 생각하오
그런 말을 한다면, 아무리 본인도 정나미가 떨어진다오

쿠로
이렇게 솔직하게 할복하고 말하고 있고, 내장 같은 것을 늘어뜨린 채로 살아있어도 꼴불견이고... 더는, 같은 바보짓은 하지 않아
솔직히. 지금은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을 정도니까. 네가 뭔가 기사회생의 아이디어 같은 걸 내놓는다면, 바라는대로 이뤄질 수 있겠지

소마
본인, 고양이는 아니오. 아니, 적어도 하스미공의 특기인 샤미센이라면, 지금의 본인보다는 도움이 될지도

쿠로
삐치지마라. 방치해둬서 미안하다니까....
변명같지만 말이야, 나도 하스미도 지쳐있었다고 할까, 주위를 배려할 여유도 없었다고
사실 꽤 충격으로 굳어있었으니까. 신경써서 만든 기획서가 어이없게 엉망이 되어버렸고
정말로 이제는 속수무책이야. 어쩌지, 길잃은 아이처럼 머리를 감싸쥐고 있을 뿐

소마
참고로, 그 기획서라는 것은 어떤 것이었소?

쿠로
나중에 공유해주지. 대충 말하자면, 우리들의 특기를 전부 담는 그런 기획이었어
전통적인 아악과 내가 만든 의상을 축으로 하고 그것을 현대적으로ㅡ아이돌과 혼합한 것 같은

소마
하하, 그것은 언제나의 [홍월]이구려

쿠로
오우. 하지만, 그것뿐이 아니야
리즈링 소속의 베테랑의 경향이라든가 팬층이라든가를 철저하게 조사해서, 겹치지 않게 신경을 써서 했었다
꽉 막힌 무대에서 아직 가득 차 있지 않은 자리를 찾았다고
게다가, 머리가 굳은 베테랑들은 생각하지 못할 듯한 신기술, 여러가지 아이디어를 담을 수 있을 만큼 담아서 말이야
소속사에는 금전적인 부담도 없고, 이득이게, 뭐 이런 사항에 대한 배려도 준비해뒀어
그치만, 소속사로부터의 대답은 NO였다. 이 기획을 실행하는 의미가 없어, 라고 하더군

소마
어째서인지...? 미지의 영역을 너무 공격적으로 다가가서,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오?

쿠로
그 부분은, 하스미가 제대로 해뒀어. 난해한 것을 누구나 알 수 있도록 설명하는 것은, 만화가 지망생이었던 그 녀석이 잘하는 분야이기 때문에
기획이 파기된 이유는, 단순명쾌하게ㅡ
내가 만든 의상이, 기획의 [핵심 중 하나] 였기 때문이다

쿠로
[이런 꼴사나운 의상을 입고 노래하고 춤을 추다니, 우리 사무실의 간판에 먹칠을 할 셈이냐]라고ㅡ
뭐, 대체로 그런 말을 들어서 말이지, 기획서는 망쳤어
그러니까 내 탓이다. 내 실력 [진짜]가 아니었기 때문에, 니들의 발목을 잡아버렸어
....내가 아마도, [홍월]의 암덩어리 인거야